일본 니가타 소녀 감금 사건
당시 초등학교 4학년 (당시9세) 소녀를 사토 노부유키가 납치를 해서 무려 자기방 2층에서
9년 5개월간 감금한 사건이다.
범인 사토 노부유키는 아빠 63세, 엄마 36세의 나이에 어렵게 가져서 태어난 늦둥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귀하게 자라서 어릴적부터 아들이 해달라고 하는건 무조건 들어줬다고 합니다.
사춘기때에는 친구들이 얘네 아빠 할아버지네 ! 라고 놀림을 당하자 그때를 계기로
마음이 삐뚫어져서 부모님을 폭행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들의 폭행을 못이겨서 아빠는 1981년 7월 집을 나갔고, 엄마도 나가고 싶었지만
아들이 엄마마저 나가면 불을 질러서 자살하겠다고 협박을 해서 엄마는 집에 남게 되었습니다.
사토는 고등학교를 졸업후 공장에 취직을 하는데 결벽증이 심해서 더러움이 조금이라도 묻거나
하면 말도 없이 조퇴하고 무단 조퇴를 서슴치 않아서 결국 직장을 잃고
그뒤부터는 집에 계속 있게 됩니다. (백수...)
학창시절부터 정신병원을 들락날락 했었고, 성인이 된 후에도 한달 정도 정신병원에
입원한적이 있었는데 그뒤에 혼자만의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하여
사토 엄마는 2층을 증축하게 됩니다. 당시 증축비용은 700만엔이 들었다고 합니다.
사토는 소녀를 납치 하기 이전에 전적이 있었는데 집앞 공터에서 노는 소녀 2명에게
접근해서 우리집 2층에서 놀지 않을래 접근 했다가 학교 직원에게 걸려서 경찰에
연행되서 징역1년이 선고되었지만 판사가 재범의 우려가 없음 이라고 해서 보호관찰
처분을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자 이는 집착의
불씨를 지피게 됩니다. 보호관찰 중임에도 차를 몰고 50여킬로 돌아다니다가
혼자 걸어가고 있는 소녀를 발견해서 차로 위협한뒤 차 트렁크에 태우게 됩니다.
1990년 11월 13일에 니가타현 산조시의 거리에서 그렇게 소녀는 납치한 사토는
자신의 집인 니가타 현 가시와자키시의 집으로 이동합니다.
자신의 방으로 소녀를 옮긴 후 사토는 소녀의 손발을 테이프로 묶고 수차례 구타했고,
집에돌아가고 싶다 말하는 소녀에게 이제부터 나랑 사는 거야 라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소녀는 9년5개월간 이 방안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갇혀 지냈습니다.
한편 같은날 13일 오후 7시 45분경 피해 소녀의 부모로부터 실종신고를 받은 경찰은
시청공무원을 포함해서 약 100여명에 가까운 인력이 동원되었으나, 아무런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고 후에 헬기수색, 컨테이너 등 방치시설에 대한 수색, 야간 검문 등을 실시
했음헤도 소녀의 흔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범인 사토는 소녀를 길들이기 위해서 내말을 잘 지켜라 라고 항상 말을 했으며
반항이나 뭔가 실수를 저질르면 즉각 폭행을 가했으며, 9년 넘게 그에게 맞은 횟수는
천번이 넘는 횟수라고 합니다. 용변 등은 비닐봉투에 담아서 처리하게 했고,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하도록 엄중히 감시 당했으며, 당연히 이를 어기면 어김없이 폭행이
가해졌습니다.
눈을 맞으면 실명될것 같아 때릴 것 같으면 스스로 뺨을 내미는 습관이 생겼으며,
91~92년 당시 범인 자신이 즐겨보는 경마 프로그램 녹화 등을 시켰는데, 이를 어길경우
역시 폭행이 이루어졌고, 그 이외에도 호신용 스턴건을 구매한 뒤, 소녀에게 스턴건으로 가했다고
합니다. 소녀를 때리다 실증이 느껴진 사토는 그 폭행을 자신의 어머니에게 돌리게 되며
어머니도 자신을 어기거나 그 이외에도 툭하면 발차기 등 매일매일 폭행하다 시피 하였습니다.
한편, 사토는 소녀가 발육을 늦추기 위해 최소한의 식사만을 제공했습니다.
하루1끼만 줬고, 그녀는 46kg였던 몸무게가 발견당시엔 38kg였습니다.
습관적인 폭행과 영양실조, 방안에서 움직일수 없었던 그녀의 몸은 점점 근육도 빠지면서
노인과 같이 쇠약해져서 잘 걷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릅니다.
1999년 12월 폭행에 시달리는 사토의 어머니는 도저히 견딜수 없어 인근 정신병원에
가서 아들을 입원시키겠다는 말을 남기자 직원은 어머니의 상태를 보고 수상하게 여긴 의사는
2000년 1월 28일 오후 1시 반 경, 정신병원 부원장, 변호사, 보건소 직원 등 7명을 대동하고
사토의 집을 방문하게 되고 2층에서 소녀를 발견하게 됩니다.
9년의 긴 세월동안 피해자는 왜 도망치지 못했던가?
사토의 엄마도 공범은 아니였을까 의심했지만 2층에 어디에도 어머니의 지문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아들에게 폭행당하는 본인도 무서워서 2층에 있는 아들의 방을
터치할수 없었다고 합니다.
소녀 또한 범인의 어머니 사진을 보고 모른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소녀가 감금되어 있는 동안 소녀의 지적 수준은 어떠한가? 도 많은 관심사중에
하나였는데 정신연력이나 지적수준은 동연령대의 소녀들과 비교해 크게
떨어지지 않았고, 가해자가 폭행을 하는 과정에도 뉴스나 만화잡지 등을 볼수 있도록
가져다 주었다. 말을 잘 듣는 날에는 1층에 내려가 tv를 볼수 있게 해주거나
샤워를 할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심지어는 약간의 수학도 가르쳤다고 합니다.
만화나 뉴스 등을 허가한 이유는 추후 진술에서 그녀의 생각이 어린아이 그대로가
아니길르 바래서 그랬다 라고 진술했고 성인이 된 후에는 그녀와 결혼을 하려고
했다고 진술합니다.
그녀를 이렇게 가르친 결과 자기와도 말이 잘 통했고, 서로 같은 주제로 대화가 되었으며
성적인 존재보다는 애완동물 수준으로 피해자를 보고 있었다는 분석 입니다.
결국 2002년 1월 22일 니가타 지방법원에서 사카기 이소오 재판장은 가해자 사토에게
15년형을 선고했고, 사람들은 소중한 10대의 시절을 빼앗아간 사토의 형량이 너무
적은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지만 사토가 과거에 벌인 경범죄에 대한 형량까지
붙여 최고 형량을 내린거라고 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히키코모리 들에 대한 시선이 차가워지고 잠재적인 범죄 집단이라는
낙인을 얻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