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상군 납치사건 '친절한 금자씨' 와 '밀양' 영화의 모티브가 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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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상군 납치사건 '친절한 금자씨' 와 '밀양' 영화의 모티브가 된 사건

심냥 2021. 11. 26.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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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상 군

 

1980년대 일어난 이윤상군 유괴살인사건 입니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와 '밀양'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기도 하죠. 

 

영화 '친절한 금자씨' 의 박찬욱 감독이 이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바 있고

영화 '밀양' 의 경우는 단편소설 '벌레 이야기'가 모티브가 되었다고 했지만 소설의 서문에는

'이윤상군의 유괴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당시 이윤상 군은 마포구의 공덕중에 살았고 경서중학교 1학년에 재학중에 있었습니다.

어릴적 소아마비를 앓아서 왼쪽다리가 불편한 학생이였지만 초등학교때에는 전교회장도

하고, 중학생 시절에도 전교1,2등을 하는 모범적인 학생이였습니다.

 

1980년 11월 13일 오후경 학교 선생님과 상담이 있다면서 집을 나선 이윤상군은

저녁시간이 넘어도 집에 돌아오질 않고 그날 저녁 8시쯤 낯선 남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옵니다.

 

"당신 아들을 납치했으며 우린 전과경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현금4천만원을 준비하고 경찰에 신고할 시 아들을 죽이겠다" 는

내용의 협박전화였으며 그 이후 3차례나 더 걸려옵니다.

(이때 당시 서울 아파트가격이 1채에 1천~1천2백만원 이였습니다.

엄청난 금액을 요구한 셈이죠.)

부모님은 4천만원은 구하기가 어려워 2천만원까지 구해보겠다고 했습니다.

 

밤새 고민하던 부모님은 그다음날인 11월 14일 경찰에 신고하게 됩니다.

범인의 전화는 2일뒤 16일날 다시 걸려오게 됩니다. 

경찰에 옆에서 감청을 하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길게 통화가 되어야 하는 상황인데

범인은 매정히 전화를 끊어버렸고 그날 다시 오후 6시 40분경 다시 전화가

걸려왔고, 수화기 너머로 이군의 목소리로 보이는 남자아이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살려주세요. 이분들이 시키는 대로 해주세요"

 

 

 

아들의 생사를 확인한 부모는 준비한 2천만원을 범인이 말한 약속장소로 들고

나갔으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범인들은 해를 넘긴 1981년 4월까지 편지로 6회,

전화로 약 62회가량 협박을 합니다. 

 

이렇게 이윤상군의 유괴사건은 장기화가 되었습니다.

 

 

협박편지의 마지막 6번째에는 이군이 교통사고를 당했으나 크게 다치치않았다 라는

안부가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편지의 1,2,5번째의 필적 조사결과 또박쓰여진 여성의 필체로 밝혀졌고,

3,4,6번째는 거친 남자의 휘갈겨쓴 필적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경찰이 혼성으로 이루어진 3~4명 정도 조직의 계획적인 범죄로 보고 있었습니다.

 

사건발생 4개월이 지나도 수사의 한계점에 다다르자 비공개 수사는 공개수사로 전환

되었습니다. 

 

이때 전두환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나선 사건이였습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은 이례적으로 대국민담화를 열고
"살려보내면 너도 살고 죽여 보내면 너도 죽는다" 라는 메세지를 남겼습니다.
덧붙여 5공과국 출범일 (3월 3일)까지 자수한다면 최대한의 관용을 베풀겠다는 말도 했지만 
결국 범인은 잡히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이군이 만나러 간다는 체육교사가 용의자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그때당시 체육교사 주영형씨에게는 이군을 살해할만한 동기가 없다는 점, 학교 교사라는 점,

4살 1살짜리의 가장이자 아버지 라는 점으로 강력히 수사 하지는 못했지만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뒤로 조사를 하고 있었는데 같은해 11월 주씨가 근무했던 여중학교에서

20명의 여학생을 강간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건은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주영형

 

그래서 경찰은 여중생 강간사건을 조사하면서 이군의 유괴사건도 같이 병행해서

조사에 들어갔고, 이군의 어머니가 "선생님이 엄마한테는 얘기하지 말고 나오랬다" 라는

진술이 사건의 실마리가 되면서 거짓말 탐지기를 하자 거짓반응이 나오는 것을 보고

집요하게 추궁한 결과 11월 29일 주씨에게 범행 일체를 자백받는데 성공합니다.

 

 

범행의 전말은 평소 주씨는 도박에 빠져있어 당시 천만원이 넘는 빚으로 채무자에게

빚독촉을 받고 있었으며, 이윤상군의 집이 부유했다는 점, 자신을 잘 따른다른 점,

소아마비가 있어서 범행실행에 실패의 우려가 적다는 점을 들어 이군을

범행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조사과정 놀라운 사실은 원래 이군의 누나를 납치 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범행을 실행시키기위해서 불륜관계를 맺고 있는 여제자 A양과 B양을 범행에

가담시켜 이군 누나납치를 하려고 했는데, 이군 누나의 납치가 실패로 돌아가자

이군을 납치하기로 계획을 변경했습니다.

 

주씨와 여제자들

 

영등포의 아파트에 끌고간 주씨는 이군을 결박했고, 이군이 자신의 누나도 유괴

하려했다는 사실을 알게되서 고함을 치며 소리를 지르자, 테이프로 입을 막고

이불로 덮고 나왔는데 다음날 아침에 확인해보니 숨져 있었다고 합니다.

 

협박전화가 걸려올 당시 이군의 목소리가 들렸었는데

이것 역시 이군이 죽기전 미리 녹음 테이프로 녹음해 둔 음성이라고 합니다.

 

이군의 사체를 어찌할까 2주간 고민하다가 북한산 강변에 암매장을 하고

범행의 공범인 A,B양에게 같이 동반자살 하자고 권했고, 주씨에게 수면제를 

받은 A양은 40알 정도를 먹었으나 실패했다고 진술 했고, B양은 단순 협박 편지에만

가담했는데 주씨가 B양에게도 자신을 사랑하면 자신을 위해 죽어달라며 청산가리가

든 병을 주면서 자살을 종용해서 실제 자살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체육교사 주씨는 1982년 11월 23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이 되고, 

그다음해인 1983년 7월 9일 사형이 집행이 됩니다.

 

공범인 A양은 징역5년형 , B양은 징역2년 집행유예 3년으로 1984년 8월 15일 광복절

특사로 석방됩니다.

 

안타깝게 이군의 어머니는 1984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는 우울증에 심하게 시달리며 힘들게 지내셨다고 하네요.

남은 피해자 가족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안되네요.

 

아무리 범죄자가 사형으로 죄를 달게 받아도 자식을 잃은 슬픔과 고통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 할수 없는 거니까요.

 

이윤상 군의 시

 

이윤상군이 초등학교 5학년때 썼던 시라고 합니다.

공부도 잘하고 시도 잘 쓰기까지 했던 어린 학생이 이런 일을 당했는지

안타까울 따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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