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주에서 사라진 일본여대생 오마사 유미 실종사건

국내사건

한국 경주에서 사라진 일본여대생 오마사 유미 실종사건

심냥 2021. 11. 28.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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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사 유미

 

1991년 3월 28일 오전 10시 일본 여대생 오마사 유미는 한국에서 실종이 됩니다.

실종당시 24세인 오마사 유미는 나고야시 근교의 미에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졸업 후 같은 대학의 대학원 고고학에 진학할 예정이였습니다.

 

평소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던 오마사는 졸업 직전에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에게 좀더 공부를 더하겠다고 밝혔고 부모님은 공부에 관심이 많았던 딸을

잘 알았기 때문에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였습니다.

 

1991년 3월 24일 그녀는 부모님께 이틀뒤인 3월 27일날 한국으로 떠난다고 부모님께 

전했고, 혼자 떠나는 딸을 걱정하였지만 떠나고자 하는 곳이 관광지였기 때문에

큰 걱정 말라고 부모님들을 안심시켰고 5박 6일 일정으로 그녀는 3월 27일 오전 8시 30분

시모노세키에서 부산항으로 떠나는 페리에 탑승하였습니다.

 

그녀는 오전 10시경쯤 부산항에 도착하였고

부산에 동서 여행사 라는 곳에서 경주와 그 다음 목적지인 부여에 유스호스텔의 숙박을

예약합니다. 

 

오마사는 경주에서 이틀 일정으로 머물 예정이였습니다.

그녀는 한국말을 잘 하지 못했기 때문에 천마총을 구경 한 후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려 결국 천마공원식당 영업부장인 임준식씨(당시 나이 38세)의 도움으로

그녀의 숙소인 계림유스호스텔을 찾아서 숙박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경주 계림유스호스텔 아직도 있더라구요

이날 저녁엔 그녀에게 도움을 준 임씨와 그의 동료직원 4명과 함께

경주시의 충효동 금강가든에서 같이 저녁식사를 한 후 밤 9시 20분경

직원들과 헤어진 후 계림유스호스텔 214호에 홀로 묵게 됩니다.

 

다음날인 1991년 3월 28일 오전 10시 경 오마사는 유스호스텔 프론트에 방키를

맡기고 홀로 관광하러 길을 나섭니다.

 

이 당시 그녀의 옷차림은 상의 초록색 티와 흰색 점퍼, 청바지, 청색의 모자와 허리에는

힙쌕을 차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게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였고 그뒤 종적을 감추게 됩니다.

 

 

 

 

 

6일뒤인 1991년 4월 3일 동서여행사 직원이 오마사의 숙박비 6만 6천원을 결제하기 위해 

계림유스호스텔을 방문했습니다.

유스호스텔 직원은 방안에 그녀의 짐이 있으니 그녀의 짐을 빼달라고 연락좀 전해달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직원의 오마사의 행방을 찾았지만 그녀를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1991년 4월 9일 동서여행사로 오사마의 부모님들이 연락을 했습니다.

한국으로 떠난 딸이 아직도 연락이 없다는 내용이였습니다.

 

3월 27일 부산으로 입국한 그녀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기로 한 날은 4월 1일 이였습니다.

 

직원은 그제서야 경찰에 그녀의 실종신고를 접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숙소를 조사하자 3천엔이 든 지갑과 양말8켤레, 속옷 3벌이 들어있는 여행용 가방을 

발견하였고, 오마사가 유스호스텔을 나간 뒤 오후 3시 30분 정도 경주시내의 금강가든에서

냉면을 먹은 사실을 확인했으나 그 이후의 행적을 알수가 없었습니다.

 

일본으로도 출국 기록이 없어 혹시나 범죄에 휘말린 것이 아닌가 하여 불국사에 수사본부를 

설치하여 유미를 찾기 위한 수사를 시작합니다.

 

오마사가 묵은 숙소 근처의 유적지를 답사하다사 실족했을 가능성을 두고 헬기까지 동원 등

탐문수사도 병행하였고, 인신매매 등 납치를 당했을 수도 있어 근처 불량배들과 조폭들 대상으로

행적조사를 하였다. 실종 이후 2개월 동안 200여명의 용의점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벌였으나 수사는 진척이 없었다.

 

오마사의 부모로부터 사진을 받아 전단지를 배포했음에도 결정적인 제보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150cm의 통통한 체격이였다 

 

당시 우마사 유미 실종보도 신문

신문으로도 한국에서 실종된 일본여대생 이라는 타이틀로 대대적으로 홍보도 하였습니다.

 

 

그당시 북한은 간첩교육을 위해 80년대 전후로 일본인들을

북한으로 납치하였는데 납북이 된게 아니냐 하였지만 우리경찰은 납북 가능성을 희박하게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유미가 사라진 시각이 대낮이였고 유적지 부근의 경주시내는

관광객들의 통행이 잦은 곳이였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 사라진 딸 오마사를 찾지 못한 부모님은 한동안 주말마다 경주에 방문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사건발생 다음해인 1992년 3월이 되면 경주경찰서에 우리딸의 수사 진척을

묻는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오사마의 아버지는 딸을 기다리다가 결국 2012년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그녀의 어머니 에츠코는 아직도 딸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오마사 유미의 어머니 에츠코

 

실종사건이 이렇게 길어지는 경우 거의 타살로 인한 시신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 부모님이 자식의 생사를 모른채 이렇게 20여년을 보낸 점에 가슴이 아픈 사건

입니다. 부디 생이든 사이든 그녀의 소식이 전해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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