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30년도 넘은 사건이지만 아직도 미국내에서 회자 되고 있는 사건으로
넷플릭스 더티 존 시즌2에서도 이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둘은 1965년 노트르담 대학 파티때 처음 만났고 미녀였던 베티에게 댄은 한눈에 반했습니다.
댄은 예비의사 대니얼 이라고 쓴 냅킨을 베티에게 건넸고 당시 댄은 코넬대 의대 신입생 이였고,
4년간의 열애 끝에 1969년 뉴욕 웨스트 체스트에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잘생긴 의대 출신의 능력있는 남자와 결혼한 베티는 모두에겐 부러움의 대상이였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남편은 결혼 하고 1년뒤에 의대 졸업장을 땄지만 의사의 삶을
포기하고 공부하겠다며 로스쿨을 입학하게 됩니다.
자녀의 양육과 생계와 댄의 공부때문에 생긴
엄청난 금액의 학자금 대출 빚까지 베티 혼자 짊어져야만 했습니다.
베티는 아동교육을 전공했기 때문에 이 전공을 살려 닥치는 대로 일을 했으며
임신중에도 혹독하게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녀는 오프라 윈프라 쇼에도 후에 나와
하는 말이 당시 행복했었다고 현모양처라는 자신의 꿈을이였다고 말이죠.
독실한 카톨릭 집안에서 자란 그녀는 현모양처라는 좋은 아내가 되라는 가르침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베티가 그렇게 고생하는 동안 다행히 댄은 의료과실 재판 전문변호사가 되어
졸업과 동시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로펌에 취직하게 되었고, 5년뒤 개인 사무실을
열게 되었고 그의나이 34살에 연봉 10억이 넘는 유명한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베티는 행복했습니다. 그동안 힘들게 자신이 아이들을 양육하며 힘들게 돈을 벌어
남편 뒷바라지 했던 그 노고가 이제서야 일이 풀려 빛을 보는 구나 라고 생각했겠죠.
이렇게 모든 힘든 굴곡을 건너 행복할 일만 있어야 될 그들에게 무슨일이
생긴걸까요?
그러던 어느날 사무실을 차리고 5년쯤 지났을때인 1983년 남편은 사무실에 개인비서를
고용했다고 말했으며 그 비서는 '린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남편이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자주 얘기하던 그녀였다는 사실에 베티는 불안해졌습니다.
22살의 '린다'는 스튜어디스 출신의 어여쁜 아가씨였고, 학력도 낮았고 법계에 지식이 만무하던
그녀였는데 그녀가 비서로 고용된 사실에 불안했고 둘이 무슨관계냐고 물었지만 남편은 아무사이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해 1983년 11월엔 남편의 39번째 생일이였고, 한달전 그녀의 생일엔
남편은 집에 없었고 베티는 아이들을 재우고 자살하려는 마음에 손목을 긋고
약까지 먹었지만 결국 살아났고 이 결혼을 어떻게든 유지하고 살리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남편의 생일인 오후 5시경 샴페인을 사들고 그의 사무실에 찾아갔지만
남편과 그의 비서인 '린다' 랑 점심을 먹으러 나가서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는
청천벽력같은 말을 듣게 됩니다.
남편은 그녀를 늙고 못생기고 뚱뚱하고 망상을 가진 정신병을 가진 여자라며
불렀고, 그녀는 남편을 위해 살짝 삐뚫어진 치아를 고치거나 주름을 피거나 하는 완벽한 여자가
되려고 노력을 합니다. 말도 안되는 완벽함을 위해서 그저 남편을 위해서..
둘의 사이는 돌이킬수 없게 되었고 1년쯤 지나서 댄은 집에서 나가버렸습니다.
당시 그녀는 남편은 일때문에 아이들을 돌보는게 얼마나 힘든지 모르는건 아닌지
직접 몸소 체험해보라며 남편의 집에 아이 4명을 놓고 왔고 아이들을 돌보면서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간의 자신의 희생과 헌신을 남편이 알아줄거라 생각했지만
그녀의 잘못된 생각이였습니다. 남편은 베이비시터를 고용했고 이를 기회삼아 베티에게
아이들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얼마후 남편은 이혼서류를 보냈고 린다를 사랑한다며 이혼하자고 합니다.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베티가 홀로 남겨진 부부공동명의의 집을 팔아버렸습니다.
후에 1992년 오프라 윈프리 쇼 당시에도 그녀는 그집은 자신의 유일한 자산이였고, 공동명의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유일한 자산이였다며 그걸 남편이 상의도 없이 팔아버려 자신을
내쫓았다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성의 끈을 끊어진 베티는 댄의 집으로 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자동차로 댄의 집문을
자동차로 들이박아 부셔버렸고 이일로 베티는 정신병원에 3일 입원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양육권은 댄에게 넘어가 버렸습니다.
그때부터 베티는 딘과 홀로 외로이 싸워야만 했습니다.
자신은 가정주부고 상대는 로스쿨을 나온 유명한 변호사였고 당시 변호사협회의 회장이였기 때문에
싸움은 바위에 계란치기 꼴이였지만 그녀는 남편이 외도한 증거 정신적인 학대 증거들을 다 수집해서
재판을 걸었지만 법원에 낸 서류들을 전부 사라졌고 싸울수가 없었습니다.
법조계에 있는 남편이기 때문에 증거들을 남편이 인맥을 통해 빼돌렸다고 생각했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습니다.
1986년 결혼 16년만에 정식이혼 재판이 열렸고, 법원은 베티가 이혼할때까지 베티에게
남편이 위자료로 월 1,6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집니다.
하지만 베티는 이러한 판결을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의 수입이 당시 대략 1억 4천 정도였고,
그의 성공은 결코 혼자 이뤄낸 것이 아니고 자신의 희생과 헌신, 뒷바라지 등을 생각했을때
자신의 지분은 절반 정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위자료 금액이 부당하게 느껴졌습니다.
그후 그녀는 댄과 린다가 사는 집에 매일 같이 전화를 해서 협박성 발언과 욕설을 했고
댄의 집에 들어가 집을 부수거나 스프레이로 사방에 칠하는 등 과격한 행동을 일삼았고
참다 못한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욕설을 할때마다 위자료를 차감한다고 했고,
어느달은 차감한 금액이 마이너스가 될때도 있었습니다.
남편은 1989년 린다와 결혼 했고, 어느날 베티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 곧 42살인데 내가 35살때부터 7년간 그 놈과 이렇게 처절히 싸우고 있구나
내인생을 7년이나 허비했구나 여러가지 생각이 휘몰아 치면서 더이상 참을수 없을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딸의 방에서 댄의 집 열쇠를 찾아낸 린다는 총을 들고 이른 새벽 남편의 집에 갔습니다.
2층에 올라가서 방문을 열자 남편과 린다가 잠들어 있었고, 이 둘에게 총 다섯발을
발사했고 린다는 그자리에서 즉사 했지만 남편 댄은 잠시 살아있었지만 그 마져도
얼마뒤 숨을 거뒀습니다.
(당시 남편 44살, 린다 28살 결혼 6개월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녀는 당일 오후에 자수했고 세상은 그녀를 향해 여러 엇갈린 반응을 보였습니다.
의대, 법대를 모두 뒷바라지 했으나 그녀는 남편의 바람으로 버림받아서 남편이
죽을 짓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랑이 식어 떠난 남편을 보내지 못하고 살인까지
한 그녀는 정당화 될수 없다는 식의 반응이 서로 대립했습니다.
그녀는 당시 남편으로 인해 정신이 온전치 못했고, 그들 앞에서 자살 하려고
갔던 거라 살인의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첫번째 재판이 있던 1990년 법원에서도 살인의 의도가 있었다, 없었냐를 두고
배심원단들끼리도 심하게
대립을 했고, 첫 재판때는 배심원단들이 합의를 포기선언을 해서 그렇게 끝났습니다.
그렇게 그 다음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오프라 윈프라 쇼에 출연을 했고
사건은 점점 유명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불행한 점은 아이들도 아빠를 옹호했다는 점입니다.
엄마가 과장해서 말하는 점도 없고 자신들에게 아빠는 굉장히 좋은 아빠라고
아빠편을 들었습니다.
자녀들도 2명씩 편이 갈려 가석방을 반대, 가석방 찬성하는 쪽이고
특히 장녀인 킴은 사건 당시 21세는 법정에서 제일 많이 증언을 했고 엄마 베티의
감정의 변화를 옆에서 많이 보아 왔겠죠. 처음엔 엄마를 이해했지만 엄마가
점점 집에 외설적인 메세지와 폭력적인 음성을 지속적으로 남겼고, 엄마가
복수에 점점 집착하는 것 같았다 라고 증언합니다.
자식들간에도 부부의 문제를 달리 보기 때문에 아이들 증언을 보면
4명아이들이 부부싸움 사이에 끼어서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냈던건 사실입니다.
그러니 이에 느끼는 바도 서로 다르겠죠.
엄마가 감정이 이렇게 휘몰아 칠 때 그런 영향들이 아이들에게 많이 가는
시기이니 아이들도 무척 정서적으로 힘들었을꺼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녀는 두번째 재판에서 1급살인이 적용되어 32년 후에나 가석방이 가능한
종신형을 선고 받고 캘리포니아 여성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현재 73세로 가석방 신청을 위해서는 84세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아직도 그녀의 이야기는 많은 여성의 공분을 사고 있고 한 신문기사에는
'그녀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이해할수 없다' 라는 옹호하는 기사도 실린적이
있었습니다.
이글을 보는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한가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녀의 살인을 정당화 할수 없지만 그녀가 남편 뒷바라지를 하며
아이와 생계를 위해 힘들게 희생적인 삶을 살았고 늙고 뚱뚱한 아내의 노고를
알아주지 못하고 젊은 여성과 바람이 난게 괘씸하게 느껴지긴 했습니다.
모든 세상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였겠죠.
또한 자신의 잘못도 아님에도 이혼을 당해야만 했고 공동명의의 집도
팔아치워 아내를 내쫓은 남편은 명명백백 잘못 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살인은 정당화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바람피워 결혼한 린다도 좋게 보이진 않네요 결국 돈많은 남자에
정신팔린건 안봐도 비디오겠고, 아내의 희생을 짓밟고 그런 아내에게 적절한 보상없이
집까지 뺏어 내쫓은 남편도 죽임을 당할 구실을 만들어 준 꼴이 된 듯
참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넷플은 보지 않았어요 괜히 보면 울화통 터질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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