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을 처음 접한건 한참 즐겨보던 '서프라이즈' 라는 프로그램 에서였다.
워낙 미스테리 이런 물을 좋아하다 보니 오랜 기억이 남아있는 사건중 하나이다.
이 사건은 워낙 화제라서 2013년 영화로도 개봉한 적이 있었다.
1959년 1월 28일 10명의 탐사대원들이 우랄산맥을 거쳐서 오토르덴산을 등반하고
2월 12일 베이스 캠프인 '비즈하이마을' 복귀할 예정이였다.
남자 8명과 여자 2명으로 구성된 대원들이였고, 이들은 모두 등반에 경험이
많은 대원들이였다.
등반하기로 한 당일날 대원 1명인 '유리 유딘' 이 고열과 두통 증세를 보여서 등반에
참여를 하지 못하고 나머지 9명만이 예정대로 떠났다.
등반을 떠난지 5일이 지난 2월 1일 폭설과 눈보라가 시작되자 '유리 유딘'은 대원들이
걱정되는 마음에 무전을 치자 곧바로 탐사대장인 '이고르 디아틀로프' 는 임시 캠프를 치고
대원들이 모두 휴식중에 있으니 걱정말라는 답변을 받는다.
그러나 그 다음날부터 연락이 두절되었고 결국 이들은
2월 12일 베이스 캠프로 돌아오기로 한 대원들은 아무런 소식을 전하지 못했고,
수색대를 파견해서 수색을 벌이기 시작했다.
2월 26일 임시캠프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1.5km 떨어진 곳에서 5명의 시신이 발견되었고,
겨울이라 악천후인 관계로 수색이 미뤄지다가 다시 봄에 수색이 재개 된후 5월 4일
조금 더 먼 인근의 계곡에서 시신 4구를 추가로 발견해 총 9명의 시신을 수습할수
있게 되었다.
사진 첫번째부터 이르고 디아틀로프 (23) 등반대장, 불탄 소나무에서 텐트로 향하는 길목인
약 300미터 부근에서 발견됨.
두번째 유리 도르센코 불탄 소나무앞쪽에서 기요르기 크리보니센코랑 발견
세번째 류드밀라 두비니나(21세) 늑골 골절로 뭔가에 깔린것으로 추정
네번째 기요르기 크리보니센코 유리 도르센코랑 같이 발견
다섯번째 알렉산드르 콜레바토프 저체온증으로 사망, 방사능 수치 초과
여섯번째 지나이다 콜모고로바 (22세) 야영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사망, 이고르 디아틀로프
시신에서 약 330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
일곱번째 루스템 슬로보딘(23세) 최초 사망자, 두개골 함몰로 사망, 이고르 디아틀로프 시신에서
180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
여덟번째 니콜라이 티보브리뇰 저체온증 사망, 두개골 함몰
아홉번째 알렉산드르 즐타레프 저체온증 사망, 늑골 골절, 방사능 수치 초과
열번째 유리 유딘 고열과 두통으로 등반하지 못함.
임시캠프 주변에 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를 중심으로 한 구는 300미터 떨어진 곳에
또 한구는 48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고, 또 한 구는 6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조금씩
조금씩 떨어진 지점에서 시신들이 발견이 되었다.
게다가 이곳의 나무들이 다 타 있던 것이였다.
먼저 발견된 대원 5명은 이 강추위에 그중 두명은 속옷만 입고 있었으며, 다들 공포에 질린 표정이였으며
나머지 발견된 4명의 대원들은 교통사고와 맘먹는 물리적인 힘이 신체에 가해진 듯한 두개골 함몰과 늑골 골절
이 보였다.
게다가 인근계곡에서 발견된 시신4구는 그전에 발견된 5명의 시신의 옷을 입고 있었다.
추정하자면 이들의 옷을 입고 도망가다가 죽음에 이른게 아니였냐는 것이다.
이 사건을 두고 전문가들은추위를 견디다 못해 그 주위의 독초를 모르고 불을 피워 환각의 상태에서
사망한 것이 아니냐는 가설이 있었지만 나중에 발견된 대원들이 먼저 발견된 대원들의
옷을 입고 도망쳤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가설은 무시되었습니다.
또한 미국의 분석가인 브라이언 더닝은 눈사태가 나서 텐트를 찢어 이들이 바로 도망치려다가 봉변을
당한것 같다고 주장했으나 발견된 베이스 캠프는 경사가 없고 완만한 평지여서 그 가설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이 미스테리한 점은,
우랄산맥은 눈이 많이 오는 곳이기 때문에 기후 때문에 불을 지필수가 없었던 곳이였는데
불에 탄 나무가 발견되었다는 점
임시캠프의 텐트는 외부에서 찢긴게 아니라 내부에서 찢겼다는 점
텐트에서 탈출 한 후 1.5km 떨어진 곳에서 모닥불을 피운 흔적이 있다는 점
이 추위에 속옷만 입고 동사한 시신이 있다는 점.
텐트에서 더 멀어진 곳에서 발견된 시신들은 물리적인 힘으로 신체가 손상되어 있다는 점
시신들이 오렌지색으로 착색되었고, 옷에서 강력한 방사능 물질이 발견되었다는 점.
혼자 살아남은 '유리 유딘'은 소련정부가 비밀리에 무기 실험을 한게 아니냐며 재수사를 의뢰했으나,
1950년대는 냉전시대였기 때문에 유딘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중에 밝혀지질 소련 정부는 이 사건의 수사기록 원본 일부를 고의로 훼손했으며, 나머지는 철저히
비밀리에 보관했고, 복사본들은 전부 다 처리했다고 합니다.
2009년 사망 50주기를 맞이해 '유리유딘'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내가 하느님께 질문할 기회가 단 한번이라도 주어진다면,
그날 밤에 도대체 내 친구들에게 무슨일이 생겼는가 라고 꼭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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