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여고생 살인사건의 범인들의 근황은?

해외사건

콘크리트 여고생 살인사건의 범인들의 근황은?

심냥 2021. 12. 27.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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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엄청 유명한 사건이다.

1988년 일본에서 일어난 정말 경악을 금치못할 엄청난 사건으로

너무 잔혹하고 끔찍해서 따로 포스팅을 못할 정도라 궁금 하신 분들은 서치 해서 보시길.

 

오래전 이 사건을 접하고서는 범인들의 근황을 찾아보기도 한적이 있었는데

한 1,2년전 부터 일본에서도 이 사람들의 근황이 돌고 있는 걸 보고 내용을 가져와봤다.

 

 

그때당시 그 범행에 가담한 주요 인물 4명만 검거가 되었는데 실제 로는 100여명 정도

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때 주범 4명 중 대장격인 

 

1. 미야노 히로시 (宮野裕史)

1970년 4월 30일 생

 

출소후 성을 '요코하마'로 바꿔서 요코하마 히로시가 되었다.

일본에서 성을 이렇게 바꾼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이건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일듯)

아마도 부모님이 호적에서 파버려서 그런게 아닐까로 추측이 된다.

 

 

당시 부모님의 직업은 아버지는 증권회사 직원, 어머니는 피아노 교사, 여동생이 한명 (당시11세)

있었으며, 꽤 금수저의 집안이였지만 아버지가 집에 잘 안들어오고 외도를 저지른 탓도 있고

어머니도 자신의 일로 바빴던 지라 아이들에게 신경을 못쓴것으로 보여진다.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펀치파마를 했고 (야쿠자식 곱슬머리), 중학교때는 운동을 하면서

유도부에 들어가게 된다. 160cm의 작은키지만 운동을 한 탓에 다부진 체격이였고

유도부에 있을 당시 선배들에게 굉장한 체벌이 있었다고 한다.

 

체육특기생으로 고등학교를 입학 했지만 선배들의 체벌에 대한 것의 스트레스를 기물을

파손하거나 엄마를 폭행하기가 일쑤라, 이로 인해 어머니는 갈비뼈가 부러진 적도 있었다.

 

중학교 시절 사귄 여자는 콘크리트 살인사건을 같이 저지른 공범 중 한명인 와타나베 야스시

친누나로 둘은 그때부터 동거를 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결혼을 하기로 약속까지 한다.

 

이후 타일 공장 이나 긴자생활점 같은 곳에서도 일한 경력은 있지만 폭력적인 성향으로

길게 일을 하지 못했으며 점점 삐뚫어지고 양아치로 자라게 된다.

 

 

콘크리트 살인사건으로 2008년 출소후 성을 '요코하마'로 바꿨으며, 7년간 해체공업소에서

일을 하다가 그만두었으며 2013년 1월 12일 당시 나이 42살에 보이스 피싱 피의자로

체포되었으나 말단 직원이였기 때문에 보이스 피싱 사건은 말단 직원이 계속 묵비권을 행사하면

몸통을 잡을수가 없는 관계로 이런 이유로 불구속 기소 처분이 내려지면서 풀려났다.

 

2년전 당시 가와구치시에 사는 주소까지 인터넷에 돌았었고,

이 사람이 진짜로 만든 계정인지 모르겠지만 구글계정으로 sns가 떠돌기도 한다.

 

 

 

이 계정의 정보란에 들아가면 89년부터 2008년까지 치바형무소에 있었고

요코하마 히로시 라는 이름으로 링크까지 걸려있다. 

 

요코하마 히로시 인물에 대한 소개글

 

 

 

 

 

 

 

 

2. 오구라 조 (小倉讓)

 

 

1971년 5월 11일 생

미야노 히로시의 오른팔 격

 

고1때 학교를 퇴학당한 후 미야노와 어울리며 양아치짓을 일삼는다.

키는 190cm의 거구이며, 가족관계는 콘크리트 살인사건 이후 부모님은 이혼하셔서

누나 한명과 엄마랑 살고 있다.

 

10년형을 받고 1999년 출소해서 '카미사쿠 조'로 개명을 했다.

중국인 여성과 결혼해서 더이상은 일본에서 살지 못할것을 생각해서 같이 중국으로 넘어가려고 했으나

파혼을 당해 결국 일본에 머물게 된다.

 

2002년까지는 컴퓨터회사에서 일을 했었고 이후로 일을 그만둔지 야쿠자 사무실을 들락 거리며

건달 생활은 해온다. 

2004년 5월 19일 자신의 애인을 빼앗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지인인 꽃집 점원인 '이소도 타카토시' (당시27살)를

납치해서 엄마가 운영하는 스나크(술집)에 5시간 감금을 하고 폭행을 한다. 

하지만 조사 결과 그 여성과 이 피해자 남성과는 얼굴도 모르는 관계였고, 피해자를 풀어주게 된 이유는

5시간 때리다가 지치니까 가버리라고 해서 피해자 남성은 즉시 경찰서로 가서 신고를 한다.

 

사건현장 오구라 엄마가 운영하는 스나크

 

이 사건으로 오구라는 4년형을 선고 받는다.

선고내린 판사는 "갱생될꺼라 믿었었는데 이번 범행을 저지른 것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진짜 책임을 느끼고 책임을 완수하면 이번에야 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다시 새출발 할껄 기대하고

있겠다" 라고 말했다.

 

당시 오구라의 엄마는 피해자 근처에서 계속 살았었는데 1층은 고깃집을 운영하고 고깃집 2층에 아들과

생활했는데 스나크가 운영이 잘되자 고깃집은 폐업한다.

콘크리트 살인사건이 있은 후에 '준코 (콘크리트 살인사건 피해자) 여자애 때문에 아들인생과 내 인생이 망쳤다'

며 준코의 묘를 부수거나 하는 되먹지 않은 행동을 했으며, 이 꽃집 점원 감금 폭행사건으로 다시

콘크리트 살인사건 피의자 라는 것이 부각이 되자 스나크는 딴 사람에게 운영을 맡긴듯 보인다.

 

그리고 이 후에는 알려진 근황이 따로 없다.

 

 

 

 

 

 

3. 미나토 신지 (湊伸治)

 

이 그룹의 일당들 중 제일 막내였으며, 그는 아다치구에 있는 꽤 명문중학교를 졸업했고

도내에서 유일한 화학전문 공업학교에 진학을 하는 우등생 이였으나 미야노와 오구라를 만나면서

나쁜길에 들어선 듯 하다.

 

 

콘크리트 살인사건 당시 피해자 준코를 미나토의 2층집에 감금하고 있었고 2층은 양아치들의 아지트

같은 곳으로 삼고 지냈었다. 부모는 폭행을 심하게 하는 아들을 무서워해서 2층에 올라가질 못해

살인을 방조한 죄를 물었으나 역시 인정되지 못하고 무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1972년 12월 16일생

가족관계는 부모와 형이 한명 있다.

형 또한 콘크리트 살인사건 피해자에게 강간하는 것에 가담했으나 별다른 처벌을 받지않고

무죄 판결을 받았다.

 

미나토는 이 사건으로 1989년 9년형을 선고받고 소년교도소로 보내졌다가, 출소후 무에타이

선수로 데뷔를 시도했으나 워낙 유명한 살인사건의 피의자였기 때문에 이는 무산된다.

 

2006년 루마니아인 여성과 결혼을 했으나 이혼 후, 2007년엔 파칭고 가게에서 일한 것으로

확인이 된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흘러 2018년 8월 19일 사이타마현에서 이웃남성과 싸움을 하다

상대방의 뒷목을 칼로 찔러 그는 현장에서 살인미수로 체포가 된다.

 

 

당시 일간지에 피해자 준코의 사진과 뒷목을 찔린 피해자 남성 사진이 실리며 기사화 되었다.

 

 

피해자 남성이 후배를 태우고 주차를 하고 있는데 미나토가 이유없이 노려보면서 다가오자

"뭘 보냐?" 하는 피해자의 말에 격분해서 얼굴을 마구 주먹을 때리다가 경찰봉을 꺼내들어

피해자 남성의 어깨를 가격했다. 피해자 남성이 미나토의 목을 팔로 조르고 있는 사이 후배는

경찰봉을 뺏었고 이로써 싸움이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한 찰나 칼을 들고 목 뒷편을 찌르려다가

피하는 바람에 엄청난 큰 부상은 없었지만 피가 많이 났다고 한다. 

칼날의 길이는 8cm였고 접이식 칼로 칼 전체의 길이는 19cm나 되는 칼이였다.

 

사건 피해자
사건이 일어난 사이타마현 아파트 주차장

 

 

 

2019년 3월 5일 재판에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3년이 확정되었다.

2021년 출소후 근황은 알려진 바 없다.

 

 

미나토는 콘크리트 살인사건 당시 재판당시에는 피해자에게 죄송하다 반성하고 있다라고

반성하는 기미를 보였으나 실제로는 뒤에서 낄낄거리며 범죄 행각에 대해 떠벌거리며

자기는 청소년이라 사형은 안당할꺼라고 말한 일화가 있다.

이것으로 보아 그는 범행에 대해 전혀 뉘우치는 경향이 없는걸로 보여진다.

 

 

 

 

 

 

4. 와타나베 야스시

 

1971년 12월 18일생

가족관계는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엄마와 누나가 있다.

콘크리트 사건 당시 범행을 제일 반성하는 걸로 알려져 있고 실제 사건이 일으킨 후에

피해자 준코네 가족을 찾아 사과를 하기로 했는데 피해자 유가족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와타나베는 원래 이지메의 피해자 였으나 누나가 미야노 히로시와 사귀면서

자신도 나쁜길로 들어서게 되었고, 4명의 소년들 중 가장 약하고 범행에 가담한 것도

제일 적었다. 실제 피해자인 준코를 나머지 3명이 괴롭히고 있을때 불쌍한 눈빛을 하였으나

3명이 무서워서 말리거나 피해자를 돕지 못했다고 한다.

 

콘크리트 사건으로 5년형을 받았으며 감옥에서 동료죄수들에게 폭행을 당해 눈과 다리에

장애가 생겼으나 출소후에는 친누나는 결혼을 해서 요코하마에 살고 있었는데

친누나 집에 얹혀 살며 히키코모리로 살아가는 듯 해서 알려진 근황이 없다. 

 

 

 

그 이외 콘크리트 사건에 가담한 공모자 중 '나카무라 코우지' 라는 소년은 당시 미야노의 협박으로

피해자 준코를 납치후 강간하는데 가담했던 소년인데 당시 주범들 4명에게 폭행을 당하자 

억지로 했다고 진술을 했었고 그 이후는 고향에서 술집을 운영해 잘 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술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이때 당시 일을 자랑하듯이(?) 얘기를 했다고 알려졌다.

 

또 다른 공모자인 '이하라 신이치' 역시도 피해자 준코를 간강하는데 가담했으나

그 이후 소년원에 보내졌고 성년이 되어서는 건설회사에서 일을 하며 결혼해서 딸을 낳고 

멀쩡히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이런 놈이 딸을 낳고 잘 살고 있다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덧,

 

 

 

사건이 일어난후 1989년 4월 1일 준코는 급우들이 보는 앞에서 장례식이 치뤄졌는데

준코의 장례식장에서 같은반 친구인 '미야시타 카나' 가 읽은 추도사를 가져왔다.

 

 

추도사를 읽은 같은반 친구 미야시타 카나

 

 

"이런 식으로 재회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팠지? 괴로웠지? 언제나 온화하고 밝았던 준짱.

문화제 때 모두와 만든 백의(일본전통 축제 의상)

정말 잘 어울렸었어.

평생잊지 못할거야.

교장선생님께서 특별히 졸업증서를 만들어 주셨어.

이로써 3학년 8반 47명은 전원 졸업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준짱.... 이젠 힘든일도 괴로운 일도 없어 편히 잠드세요"

야시오 고교 3학년 8반 일동.

 

 

 

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전세계적으로 놀랐던 끔찍한 일이 였었는데

이런 사건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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