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바라키 현 남부에 위치한 미호무라는 인구가 약 7만명이 사는 작은 촌의 마을로
당시 나이 21살의 하라마 미사토는 이바라키 대학 농학부에 입학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였습니다.
2학년때는 학생회 총무부에서 활동하게 되었고, 학교수업이 끝난 후에는 학교안에 있는
철인3종경기 동호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미사토는 이 철인3종경기 동호회에서
회원이면서 같은학교 4학년인 남성 A를 사귀게 됩니다.
연인이 된 둘은 대학교 근처 아파트를 렌트해서 함께 살게 되었고, 얼마후 밤이 깊은 날
친구를 만나러 나간 후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됩니다.
그녀가 실종된 날은 2004년 1월 30일
학교에서 철인3종경기 준비로 무척 바빴고 아르바이트까지 마치자 밤 9시가 넘어서
그녀와 남자친구가 같이 사는 아파트에 도착했고, 같이 저녁을 먹은 후 남자친구를
일찍 잠이 들었고, 밤 12시경 미사토는 외출 준비를 합니다.
남자친구에세 외출 사실을 알리려고 했으나 잠을 깨우기 그래서 혹시나 일어나서
자신이 없는 사실에 놀랄까봐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겠다 라는 메모를 남기고
외출을 하게 됩니다.
그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남자친구는 책상위에 미사토의 렌즈, 지갑 및 그녀의 물건들을
보게 되는데 미사토의 경우 시력이 매우 나빠 안경이나 렌즈를 끼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매우 불편합니다. 이상한 점을 느꼈지만 책상위에 그녀의 메로를 발견하고 걱정했지만
그녀의 말처럼 돌아오겠지 하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음날 아침 수로근처에서 산책을 하던 53세 C씨는 하천위에 떠다니는 시체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게 됩니다.
피해자 미사토는 알몸 상태였고, 몸 곳곳에 외상흔적이 있었으며, 주변 300M 반경에 집 한채 없을 정도로
인적이 드문 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은 목격자를 찾기위해 수사를 벌였지만 목격자를 찾는데 실패합니다.
경찰은 제일 먼저 남자친구에게 이 사실을 밝힌 후 남자친구의 진술에 따라 먼저 그들이 같이 사는
집에서 루미놀 테스트를 하게 되었고, 혈흔 반응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부검 결과 질식사로 밝혀 졌고, 몸에 여러개의 상흔 외에도 남성 몇명의 체액도 발견이 되었는데
남자친구의 DNA는 발견되지 않아 용의선상에서 제외가 됩니다.
위속의 음식 내용물을 보아 남자친구가 9시쯤 저녁을 먹었다는 진술에 따라 4시간 후쯤 사망한 것으로
사망시간이 추정됨에 따라 새벽 1시쯤에 숨진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어떤친구를 만나러 나갔는지 그녀의 핸드폰을 조사했지만 어떠한 대화흔적도 발견하지 못했고,
그녀의 가족, 친구, 지인 등 180여명을 탐문 수사 했지만 역시 어떠한 사실도 알아내지 못합니다.
미사토의 부모님은 200만엔 (우리나라 돈 약 2천만원이 넘는 금액)현상금을 걸고 전단지를 나눠주면서
사건이 해결되길 바랬지만 결국 이 사건은 장기 미제가 됩니다.
이바라기현은 농업이 발달한 곳으로 값싼 임금을 주는 외국인 노동자를 선호하게 되는데
그래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DNA도 확보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지 13년 후인 2017년 새로운 용의자가 나타나 기후현에 있는
필리핀 노동자를 찾아가게 되었는데 그의 횡설수설한 태도에 DNA를 조사해 보자
미사토의 체내에서 발견된 여러 DNA중 하나와 완벽히 일치하는 것이였습니다.
그 필리핀 용의자는 35세의 필리핀 출신으로 란파노 쥬에리코 모리 라는 남성이였습니다.
당시 기후현의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이미 가정을 이뤄 3명의 아이와 함께
처가에서 생활하는 사람이였습니다
사건이 일어났던 2004년당시 모리는 이바라키현에 있었고 모리의 진술을 바탕으로
당시 사건은 이랬습니다.
당시 22살이였던 모리는 친구의 소개로 이바라키현에서 일을 구하게 되었고
사건이 일어난 2004년 1월 30일 일을 마친 모리는 동료2명과 회식을 하고 있었고,
동료는 각각 18살, 19살 이였고, 세사람은 자동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다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미사토를 발견합니다.
술을 마신 세 사람은 순간 욕정을 참지 못하고 차안에 강제로 태운후 차안에서
몹쓸 짓을 벌입니다. 그리고 차안에서 질식시켜 그녀의 목숨을 빼앗은 후 그대로 하천으로
차를 몰아 하천에 그녀를 유기합니다.
1심재판에서 모리는 자신은 사건의 주범이 아니니 형량을 감형해 달라고 선처를 호소했으나
재판결과 무기징역이 선고됩니다. 1심재판의 형량이 과중하다며 다시 항소를 했으나 2심 역시
1심 그대로 판결이 유지됩니다.
범행 당시 두려움을 느낀 3명은 필리핀으로 도망쳤으나 모리는 일본의 높은 임금으로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이바라키현이 아닌 기후현에서 일자리를 잡아 생활했으며
이후 인터폴을 통해 남은 공범2명의 소재도 파악하게 됩니다.
나머지 2명은 필리핀에서 생활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일본과 필리핀 양국은 범죄인 인도조약을
체결하고 있지 않은 탓에 필리핀으로 도주한 범죄자를 처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 둘을 국제수배자 명단에 올렸으며 2018년 말에 필리핀 공범중 1명이 자수의사를 밝혔고,
2019년 1월 자수한 범인 1명은 일본 경찰에 인도되었습니다.
하지만 사건당시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얼굴은 공개하지 않았으며, 나머지 공범1명은
여전히 필리핀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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